• 최종편집 2024-12-2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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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KOFA, 주한외국인투자기업 송년의 밤 성대히 열려....
    2024 KOFA, 주한외국인투자기업 송년의 밤 성대히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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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2
  • 시대를 앞서간 혁신의 아이콘, 제브라(Zebra) 퍼터의 귀환
    [GEN - 주한외국기업뉴스] LAUNCHING 46년 만에 부활한 말렛 퍼터의 제왕, Zebra 국내 독점 론칭 대담하고 혁신적인 정렬 시스템으로 말렛 퍼터의 시대를 이끌었던 브랜드 Zebra가 46년 만에 부활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Zebra는 1976년 세계 최초의 D자형 페이스 밸런스 말렛 퍼터로 탄생했다. 출시 첫해 메이저 대회 우승의 주역이 되며 골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고도 강렬했다. 스카티 카메론을 비롯해 수많은 클럽 디자이너와 골퍼들을 매료시켰던 Zebra는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시금 부활하게 됐을까? HISTORY 퍼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 체인저의 등장 Zebra의 역사는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골프업계는 Ping의 Anser와 같은 블레이드 퍼터가 시장을 지배했다. 발명가 데이브 테일러(Dave Taylor)는 더 큰 퍼터 헤드가 더 높은 관용성을 발휘할 거란 가설을 세우고, 색다른 둥근 헤드에 스트라이프 정렬 보조 장치와 원하는 대로 무게를 조절하는 웨이트 시스템을 갖춘 퍼터를 선보였다. 대중은 이 낯선 존재에 난색을 표했지만,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1976년 전설적인 골퍼 레이먼드 플로이드(Raymond Floyd)가 Zebra 퍼터와 함께 Masters에서 우승하며 단숨에 ‘메이저 챔피언의 퍼터’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Zebra는 데이브 테일러가 1979년 램 골프에 총판을 넘긴데 이어, 아들 데일 테일러(Dale Taylor)가 이듬해 모든 상표와 특허를 Ram Golf에 넘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Zebra의 인기에 힘입어 Ram Golf는 3년 만에 두 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80년대에는 맞춤형 클럽 피팅 및 클럽 제작 서비스에 집중하며, 한때, 골프 매거진에서 업계 1위의 맞춤형 클럽 메이커로 선정됐다. 하지만 많은 골프 브랜드가 대기업으로 변모하던 90년대 패밀리 비즈니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Golfsmith의 자체 브랜드로 전환됐고, 결국 사업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2019년 영국 회사 Golf Brands, Inc.에 인수되기까지 Zebra는 과거의 영광을 잊은 채 묵묵히 수면 아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2022년 2월 드디어 브랜드 고유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재해석한 새로운 Zebra가 올랜도 PGA에서 리브랜딩 된 디자인을 선보이며 화려한 귀환을 선언했다. 시대를 앞선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Zebra의 부활은 사실 예고된 수순이었다. 짧은 영광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골프 역사에 Zebra가 남긴 발자취는 그만큼 강렬했다. 1994년 닉 프라이스(Nick Price)가 The Open Championship에서 Zebra 퍼터로 우승을 확정한 후 하늘 높이 치켜든 모습은 지금도 “1994년, 상징적 퍼터로 상징적 승리를 얻다 An iconic win in 1994 with that iconic putter” 라는 타이틀로 Championship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Golf Monthly'가 선정한 ‘게임을 변화시킨 6가지 퍼터 디자인’, 'Sports Illustrated'가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퍼터 중 하나’ 라 극찬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Zebra는 최초로 대성공을 거둔 말렛 퍼터였으며, 교체 가능한 헤드 무게 덕분에 골퍼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퍼터를 개인 맞춤화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 전설적인 퍼터 디자이너 스카티 카메론 역시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차고에서 퍼터를 가지고 놀다 발견한 Zebra 퍼터가 자신을 퍼터 디자이너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스트라이프와 조절식 웨이트, 헤드와 그립이 헤드 커버와 매치된 디자인을 본 순간 아홉 살 소년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멋진 퍼터 that’s the coolest thing I’ve ever seen”와 사랑에 빠졌다. 46년 만에 귀환을 선언한 Zebra 퍼터의 등장에 전 세계 골퍼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DESIGN 골프를 사랑한 물리학도, 퍼터 디자인계의 거장이 되다 전설적인 Zebra 퍼터를 리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퍼터 디자인계의 거장 오스티 롤린슨(Austie Rollinson)이 맡았다. Odyssey, Titleist 등에서 골프 클럽과 퍼터를 설계한 롤린슨은 젊은 시절 넘치는 패기와 배짱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퍼터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탁월했던 그는 졸업하기도 전에 Callaway Golf 회장 엘리 캘러웨이(Ely Callaway)에게 직접 손 편지를 보내 채용된 야심찬 인재였다. 지난 30여 년간 그는 500개 이상의 퍼터 모델에 참여했으며, 300개 이상의 골프 관련 특허 출원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다. 오스티 롤린슨은 오리지널 Zebra의 가장 상징적인 기능들을 디자인 유산으로 계승하고자 했다. 브랜드 고유의 스트라이프 정렬 시스템과 페이스 밸런스 샤프트 및 조절 가능한 웨이트 기술을 핵심 기능으로 유지하고, AI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이를 과감하게 발전시켰다. "Zebra 퍼터를 디자인하며 우리는 모든 골퍼가 최고의 퍼팅을 할 수 있도록 정렬, 관용성, 무게와 촉감, 볼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능 범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습니다." 롤린슨의 말처럼 새로운 Zebra의 강점은 디자인과 성능의 이상적인 밸런스에 있다. 천재 디자이너 오스티 롤린슨의 창조적 DNA와 AI테크놀로지의 만남 Zebra 퍼터의 새로운 제품명에 적용된 AIT는 인공지능 기술(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y)의 약자다. 롤린슨은 AI 테크놀로지를 통해 Zebra 개별 모델의 중심 무게 배치 및 MOI를 최적화하는데 집중했다. MOI, ‘관성 모먼트(Moment of Inertia)’는 퍼팅의 정확성과 직결된다. 클럽 개발자들은 한정된 헤드 크기 안에서 최대한의 MOI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 경쟁을 펼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Zebra 퍼터의 페이스 인서트는 골퍼들에게 우레탄의 부드러운 터치감과 강철의 견고한 반응성을 동시에 선사한다. CNC 밀링 된 303 스테인리스 스틸 페이스 플레이트를 소프트 우레탄으로 감싼 디자인은 적절한 탑스핀과 부드러운 롤링으로 접지력을 최대화해 퍼팅 거리의 일관성을 제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페이스 인서트의 다중 소재 구조 덕분에 기존에 출시된 스틸 페이스 퍼터들에 비해 무게는 절약되고, MOI는 더 높일 수 있게 됐다. AI테크놀로지를 적용한 제브라 스트라이프 정렬 시스템 Two Ball, Triple Track, True Path 등과 같이 최고의 골프 퍼터 브랜드는 고유의 정렬 보조기술로 골퍼가 더 일관성 있게 목표를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1976년 이후 Zebra의 가장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제브라 스트라이프 정렬 시스템(Zebra Stripe Alignment System) 역시 퍼팅 시 정확한 방향을 설정을 돕고 퍼팅의 일관성을 높여준다. 블랙 & 화이트의 스트라이프는 오랜 세월 Zebra 퍼터를 기억해 온 마니아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심플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동시대 골퍼의 감성을 충족시킨다. 새로운 Zebra는 모든 유형의 퍼팅 스트로크와 골퍼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4가지 현대화된 헤드 모양을 선보인다. 클래식한 D자 모양의 말렛 헤드 AIT 1-Rounded Mallet는 1976년 초기 모델과 가장 유사한 디자인으로 높은 MOI와 무게 중심을 낮춘 말굽 모양 헤드, 토와 힐에 교체 가능한 2개의 무게추(15g)가 특징이다. AIT 2-Fang Mallet은 헤드 가장자리와 뒤로 무게를 분산하는 송곳니 모양의 헤드다. 양쪽으로 갈라진 헤드는 MOI를 높여 볼이 직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프 말렛인 AIT 3-Inertia Mallet은 사방으로 무게를 분산해 MOI를 최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솔에 4개의 웨이트 포트를 두고 스트로크 스타일에 따라 무게 중심을 바꿀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블레이드 타입의 AIT 4-Wide-Body Blade가 있다. 블레이지만 말렛 수준의 MOI를 갖춰 안정된 방향성을 보여준다. 퍼터는 홀의 최종 스코어를 결정한다. 14개의 골프 클럽 중 단연 많이 사용하는 클럽 역시 퍼터다.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18홀을 라운딩 하며 골퍼는 평균 30~35개의 퍼팅을 한다. 매 순간 승패가 갈리고, 희비가 엇갈린다. 소재, 디자인, 구조에 이르기까지 골프 클럽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시도는 늘 퍼터에서 시작됐다. 그 전설의 한 챕터를 완성하기 위한 Zebra의 노력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 INTERVIEW
    • Hot Issue
    2024-12-02
  • 이영희 명인, 제31회 방일영국악상 수상… 국악계의 빛나는 업적과 헌신
    [GEN - 주한외국기업뉴스] 2024년 11월 26일, 국악계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이영희 명인이 제31회 방일영국악상을 수상하며, 그의 평생 헌신과 업적을 기념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코리아나 호텔 글로리아 홀은 이 날, 전통 음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150여 명의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축하와 감사의 마음이 어우러진 가운데, 이영희 명인은 한국 국악의 뿌리를 지키며 꽃을 피워온 자신의 긴 여정을 돌아보며 감동의 순간을 맞이했다. 국악 교육자로서의 길 1958년, 이영희 명인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덕성여자대학교 국악과를 찾아가 김윤덕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김윤덕 선생의 운현궁 연구소에서 가야금 산조와 거문고 산조를 배우며 국악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갔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한일섭 선생에게 아쟁을 배우기 시작했고, 4학년 때는 전국신인 방송국악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국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초대 박헌봉 교장의 발탁으로 국악예술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후학 양성에 나섰다. 국악예술학교에서 그는 김윤덕, 성금연(가야금), 한영숙(무용), 지영희(해금), 박귀희(판소리) 등 당대의 명창들과 함께 학생들을 지도하며 국악 교육의 황금기를 열었다. 이 시절의 교육 커리큘럼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통예술을 배우게 하여, 다재다능한 국악 1세대들을 배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년 이상 교직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넘기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의 결단은 후학들에게 깊은 감동과 존경을 남겼으며, 그가 양성한 제자들은 오늘날 국악계를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이영희 명인의 감동의 답례 이날 시상식에서는 이영희 명인의 제자들이 축하 공연을 펼쳤으며, 이 명인은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며 감사의 뜻을 답례로 전했다. 그의 연주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고, 국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 시상식에 참석해 이영희 명인의 연주를 감상한 대구대학교 김성애 명예교수의 감상평을 소개한다. 선생님께서는 가야금을 연주하시지 않았다. 그저 소리나는 가야금을 부드럽게 만지고 계셨다. 그 만지는 손길이 닿은 음의 부드러움은 마치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책상 위 고양이의 이마를 만지듯하고, 새벽이슬이 커다란 연잎 위를 구르듯하다. 때로는 물 많은 강물이 절벽 아래 바위에 내동댕이 쳐지듯 우렁차고 때로는 잠자리가 뒷마당 장독 위에 살포시 앉는 듯 소리가 없다. 특히, 휘몰이장단을 타고 숨 쉴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음들은 가히 심연의 바다를 휘감고 또 휘감으며 돌아 나오게 함에, 마치 태풍의 눈 안에 머무는 듯하다. 이영희 명인의 해외 입양아 문제와 국악의 만남 이영희 명인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해외 입양아 문제를 국악과 연결해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입양아들이 한국적 정체성을 되찾고 문화적 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기획했다. 이영희 명인의 노력은 해외 입양아들에게 국악이 곧 고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들의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했다. 이영희 명인은 국악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를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교두보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국악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국악협회의 사회적 책임을 재조명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국악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방일영국악상 이영희 명인의 제31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은 그의 평생 헌신과 업적을 기리는 자리임과 동시에 국악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열정은 국악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귀감이 되고 있으며, 전통 예술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번 수상은 국악계와 문화예술계가 함께 국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며 전통의 힘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남았다.
    • INTERVIEW
    • Hot Issue
    2024-12-02
  • 자연스럽고 세련된 유럽 감성의 타일을 보유한 ㈜혜인세라믹 타일업계 신흥강자로 우뚝!!
    [GEN - 주한외국기업뉴스] (주)혜인세라믹은 2005년 8월 유통업계 메이저 회사인 충남타일(주)로부터 독립하여 서울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았고 국내 주 공급업체와 공장들로부터 기존 서울 대리점들의 상권 보호 요청에 따라 제품을 공급받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김희정 대표는 이에 꺽이지 않고 해외로 공급처를 찾아 이태리, 스페인,중국,등 공장을 방문하여 기존 시장에 없던 디자인의 타일들을 수입하여 점점 거래처를 확보해 나갔으며, 차후에는 자신만의 디자인과 사이즈의 타일을 OEM 생산하여 경향하우징 페어에 참가하여 선보이면서 수많은 대리점과 고객을 확보하게 됐다. 김희정 대표는 의상 디자인을 공부한 자신의 전공을 살려 획일화된 디자인과 사이즈를 벗어나 네추럴하고 대리석처럼 자연스러운 변화가 있는 감성을 타일에 불어 넣고자 했고 다양한 사이즈를 섞어 시공 하도록 했는데 다행히 수백여개 대리점과 인테리어 고객 들에게 어필되어 기존의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자연스럽고 세련된 유럽 감성의 독자적인 타일을 보유한 회사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13 년부터 중국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제품의 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조잡하게 COPY한 제품들로 인해 시련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재고가 쌓이면서 바뀐 시장에 대해 많은 회의와 고민을 하게 됐다. 김희정 대표는 ‘위기는 또다른 기회’라고 생각하고 쉽게 COPY가 되는 시장에만 매달리지 않고, 한번 SPEC 되면 쉽게 COPY가 허용되지 않는 아파트 건설 시장에도 눈을 돌려 본격적으로 시티건설, 지에스 건설, 포스코 건설, 대우건설등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들과 협력업체를 맺고 타일을 납품하게 되면서 다양한 고객층과 유통,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타일 업계의 신흥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특히 매년 열리는 이태리 볼로냐 박람회와 스페인, 중국 전시회들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미래의 유행 디자인을 예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고, 그 감각을 바탕으로 수입 타일 뿐 아닌 중국 현지 공장과도 연계하여 남들과 차별화되는 세라믹 타일을 OEM 생산하고 있다. 다음은 김희정대표의 창업 배경, 사업의 비전과 경영전략을 들어보았다. Q 타일업계에 진출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A 돌아가신 할아버님 때부터 건축자재 유통을 해오셨고 부모님께서 타일 유통 사업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IMF가 터지자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그때 가업을 돕고자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으로부터 타일 유통을 배우게 됐습니다 Q 여성 CEO로서 건설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시진요? A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끈기와 인내로 계속 찾아 다녔고 현장에서 답을 찾다 보니 제가 더 잘 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더라구요. 납품을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저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공장 생산 라인을 방문하고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공장은 가본적도 없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교포직원의 말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었고 그것이 가격과 디자인에 반영되어 남들과 차별화 할수 있었습니다. Q 연 매출 100억이상의 유통업 자재시장에 신흥강자로 성장했는데 그 배경은? A 우수한 디자인과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중국공장), 이태리, 스페인 등 선진화된 고급타일의 독점적 네트워크등을 갖춤으로써 시장에 따른 요구사항과 차별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과 적극적인 A/S도 성장할 수 있는 기본 배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향후 미래 성장 기업으로 나가는데 더욱 주안점을 두는 사항은 무엇인지? A 무엇보다 고객이 원하는 앞서가는 타일 디자인을 구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AI기술을 타일 디자인과 생산에 접목한다든지 여러 가지 새로움을 향한 도전을 게을리하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빠르고 철저한 A/S 와 소비자 모니터링 서비스로 고객에게 신뢰를 구축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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